참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지난 한 달, 잘 지내셨나요? 저한테는 참 긴 하루하루였는데, '한 달'이라고 쓰니까 되게 짧게 느껴지네요.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작업이라 불리는 행위를 모조리 멈췄었어요. 아니 사실 삶이라는 것 자체를 멈췄던 시간이었어요. 2024년이 끝나는 것도, 2025년이 시작되는 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답니다.
사랑과 미움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고, 정돈하는 것에 2024년을 다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거에요. 저를 도마 위에 올려두고 다졌다가 이내 뜨거운 불 위에서 지지고 볶고 하며, 답을 찾아내고 싶었죠. 이걸 해낸다고 세상이나 제 역사가 바뀌는건 아닐지라도요.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잖아요. 탐구의 자세로 세상과 스스로와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애쓰는 것에 삶을 쏟아붓는 것이잖아요. 내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지구가 돌고 그로 인해 해가 뜨고 지고,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처럼. 그냥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이런 제게 지난 연말에 연이어 일어난 사건들은, 제 생각보다 더 큰 충격을 줬었나봐요. 애국자도 아닌데 나라가 무너지고 분열되는 걸 보니 지난 1년의 고군분투가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또, 순식간에 일어난 무고한 죽음들 앞에 정말이지 열심의 무용함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애도하기 보단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심겨진 듯한 사회 분위기를 느끼며 모든 이해의 노력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쉽게 말해, 이 사건들로 인해 제 삶이 어디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던거에요.
처음엔 잠이 좀 늘고, 밥 먹기가 귀찮고, 씻기가 귀찮아졌을 뿐이었어요. 스스로가 나태해졌다 믿으며 채찍질하고자 서점에 갔어요. 진부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자기개발서를 뒤로 하고 나가려던 찰나에, 제 눈을 사로잡은 책은 다름 아닌 니체의 책이었습니다. 제목이 <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였거든요. 짧은 철학적 단상들이 쉬운 문장으로 적혀있는 얇고 작은 책이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그 쉬운 문장들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어요. 책 뿐만이 아니었어요. 핸드폰이나 영상을 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괴로워졌어요. 스스로가 추락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애써 약속을 만들거나, 파트타임 대타를 자처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집은 커녕 개인의 청결조차 지키기 어려워졌습니다. 점차 숨을 쉬는 것 외의 모든 것을 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전 오랫동안 중단했던 우울증 약을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입원한 것처럼 하루 일과를 채우세요. 일은 전혀 하지 말고, 기상하면 세안하고, 식사하고 가벼운 산책하시고, 또 식사하고 가벼운 실내 활동 하시고, 마지막 석식을 드시고 나면 일찍 잠드는 루틴으로요." 하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어요. 가벼운 실내 활동으로는 뜨개질을 시작했고요.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내다 보니 목도리 3개와 모자 3개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근무하고 있는 필름 현상소의 사장님의 무지성(?) 지지에 힘을 입고, 짧은 영상물도 조금씩 만들게 되었어요. 가장 기쁜 것은 미뤘던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에요. 비로소 니체가 세상에 전했던 위로와 격려가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